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가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 논란 속에 파행을 빚었다. 김무성 대표는 중도 퇴장했고, 일부 참석자 간 고성과 막말이 오갔다. 긴급 최고위원회의 이후 유 원내대표에게 “시간을 주겠다”고 약속한 지 3일 만에 또 다시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이에 앞선 지난 29일 새누리당 지도부는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갖고 유 원내대표에게 시간을 주기로 결정했다. 이에 유 원내대표 역시 “고민하겠다”고 유연한 자세를 취하면서 친박 측은 더 이상 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왔다.
그런데 “시간을 주겠다”고 한지 사흘 만인 2일, 김태호 최고위원이 “결단을 내리라”며 사퇴를 종용한 것이다. 친박 측은 그간 국회법 개정안 재의 날짜인 6일 유 원내대표가 사퇴할 것을 기정사실화했다. 결국 김 최고위원의 이날 발언은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음을 방증한 셈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발언하고 있는 가운데 유승민 원내대표(좌)와 서청원 최고위원이 발언을 듣고 있다.(사진=새누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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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콩가루 집안이 잘 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유 원내대표 스스로 ‘콩가루가 아닌 찹쌀가루가 되겠다’고 했는데, 이제 그 말씀을 행동으로 보여줄 때가 지금”이라며 “당과 나라를 위해 용기 있는 결단을 촉구한다”고 사퇴를 압박했다.
이에 화가 난 원유철 정책위의장은 “(긴급 최고위를 한지) 일주일이 지났나, 열흘이 지났나”라며 “유 원내대표보고 그만두라고 계속 얘기하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유 원내대표를 감쌌다.
김 최고위원이 다시 마이크를 이어받으려 하자 김 대표는 “그만하라”고 막아섰고, 김 최고위원은 “발언 취지가 잘못 전달되면 안 된다. 한 말씀 드리겠다”며 추가 발언을 강행했다.
그러자 김 대표는 “회의 끝내겠다. 회의 끝내”라며 언성을 높인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당혹감을 보인 김 최고위원이 “대표님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맘대로 해”라는 김 대표의 단호한 목소리였다.
친박계 맏형 서청원 최고위원이 말렸지만, 김 최고위원은 “사퇴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니깐 얘기하는 거 아니냐. 사퇴할 이유가 왜 없어. 무슨 이런 회의가 있어”라며 노기를 감추지 못했다. 유 원내대표는 눈을 감은 채 굳게 입을 닫았다.
△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를 촉구하는 김태호 최고위원을 향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사진=YTN뉴스 캡처) |
시간 주겠다더니 3일 만에 폭발, 왜?
친박 측에선 그간 유 원내대표에게 고민의 시간을 준 이상 불필요한 계파 갈등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사퇴에 대한 언급을 자제한 채 대승적 결단을 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한 것이다.
친박계 핵심 의원은 1일 <커버리지>와 통화에서 “유 원내대표가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 우리로선 퇴로를 열어준 것”이라며 “6일 국회법 개정안 문제가 처리되면 곧바로 사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퇴가 확실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렇게 된다.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라며 물러섰다. 이어 “의원총회도 취소했고, 우리로선 할 만큼 했다”며 “지금은 기다리고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친박 핵심 의원이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한 지 하루 만에 김 최고위원은 ‘유승민 사퇴’를 언급하며 공세를 가했다. 이는 결국 유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방증한다. 즉, 친박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유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는 7일로 6월 임시회가 끝나기 때문에 곧바로 8일부터 임시회를 소집해서 추경안 논의에 들어가겠다”며 “가능한 20일까지 처리하도록 상임위와 예결위를 독려하고 야당의 협조를 구하겠다”고 했다. 원내대표직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그는 전날에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거취 문제와 관련, “상황이 변한 게 없고, 드릴 말씀이 없다”고 기존 스탠스를 유지했다.
“희롱당한 느낌”…유승민을 어찌할꼬
△유승민 원내대표(사진=새누리당) |
유 원내대표의 꼿꼿한 행보에 애가 탄 쪽은 친박계다. 잠시 확전을 자제한 채 숨을 고르고 있지만, 사실상 마지노선인 6일까지 사퇴하지 않을 시 총공세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친박계 한 의원은 2일 <커버리지>와 통화에서 “고민하겠다고 한 사람이 국회 일정 등을 잡고 하니깐, 희롱당한 느낌”이라며 “김 최고위원이 화를 낸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쨌든 6일까지 기다리겠다고 한 만큼 지켜보는 게 도리가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원내수석부대표나 정책위의장에게 일정을 맡겨놓고 자신은 숙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 뒤 “‘내가 왜 사퇴해야 하느냐’는 식이면 곤란하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끝까지 버틸 경우 우리도 총공세를 펼 수밖에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전날 국회 운영위원회의가 갑자기 연기된 것을 두고 청와대의 작품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주요 당정협의에서 유 원내대표를 사실상 배제시킴으로써 그를 압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청와대 요구로 운영위회의가 연기됐다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고, 이후 김 대표가 직접 나서 ‘내가 연기했다’고 중재했다.
김 대표는 1일 열릴 예정이었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대응을 위한 추경 편성을 논의하는 당정협의도 유 원내대표를 빼고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직접 주재하도록 지시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유 원내대표를 당무에서 배제 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고위원 전원사퇴(?)…‘누구 좋으라고’
유 원내대표의 ‘버티기’가 계속되면서 당 안팎에선 최고위원 전원 사퇴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서청원 김태호 이인제 김을동 이정현 최고위원이 모두 사퇴하더라도 김 대표가 반드시 사퇴하리란 보장도 없다. 사실상 유승민에 이은 김무성의 ‘버티기’다.
만약 그렇게 되면 20대 총선을 앞두고 친박은 전멸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최고위 전원 사퇴 카드’는 여러모로 조심스럽다.
친박 핵심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최고위원이 사퇴한다고 해도 김 대표가 사퇴하지 않으면 끝이다. 또 김 대표가 사퇴해도 결국 유승민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게 된다”며 최고위 전원 사퇴에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 “최고위 사퇴 얘기는 우리가 그만큼 결연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지 않을 시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 “그렇게 돼선 안 된다”면서도 뾰족한 수를 내놓진 못했다.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 모습.(사진=새누리당) |
‘뻗치기’ 예고한 친박 “때 기다린다”
김 최고위원 발언 후 갈등관계가 증폭됐지만, 친박 측에선 여전히 현 상황에 차분히 대응하는 모습이다. 지금은 친박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6일까지 시간을 주겠다고 한 만큼 더 이상 압박하는 것도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충청권 의원 10여명은 오는 6일 ‘유승민 사퇴 촉구 성명서’를 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비박계 의원의 ‘유승민 지키기’에 맞서 여론전을 펴겠다는 것이다.
충청지역 한 친박계 의원은 2일 <커버리지>와 통화에서 “PK(부산·경남)이나 TK(대구·경북)는 지금 눈치만 보고 있다”며 “국회법 개정안 재의가 끝나면 충청의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는 “모든 것은 타이밍이 있다. 유 원내대표에게 공이 넘어간 만큼 기다려 보겠다”고 숨을 돌렸다. 그러면서 “지금은 유 원내대표에게 동정론이 생겨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동정론은 사라질 것”이라며 “우리는 그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즉, 시간은 개인보다 당·청에 유리한 만큼 ‘장기전’에 대비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결국 이를 풀어쓰면 유 원내대표 ‘버티기’에 박 대통령이나 친박 모두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어쨌든 당심(黨心)과 여론은 현재 유 원내대표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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