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사태’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깨졌다. 더욱이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영남에서조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지율 저하에 대한 조바심이었을까. 아니면 메르스 정국에 대한 정면 돌파였을까? 집권 3년차, 박 대통령은 정치적 ‘한 수’를 내던졌다.
‘유승민 사태’로 친박계는 결속했다. 특히, 김무성 대표 체제에 조금씩 흡수되기 시작한 범친박계 인사들의 동요도 나타났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심적 동요만 있을 뿐 평의원들의 집단행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 원내대표는 ‘버티기’에 들어갔고, 상당수 의원들이 그를 지지했다. 몇몇 친박 인사들이 분위기를 몰아갔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효과는 미미했고, 친박의 영향력이 전만 못하다는 것만 확인시켰다. 박 대통령의 레임덕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오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결과적으로 당내 주도권을 통해 조기 레임덕을 막고자 했던 박 대통령의 ‘한 수’는 오히려 레임덕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박 대통령을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1일 <커버리지>와 통화에서 “정권이 중반으로 넘어서면서 레임덕도 가시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이 비상식적인 개혁을 하려는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 갈등을 계기로 레임덕의 속도 또한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창선 정치평론가 역시 본지와 통화에서 “박 대통령이 권력을 놓지 않겠다, 밀리지 않겠다는 것을 ‘유승민 사태’를 통해 보여줬다”며 “그러나 결국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유 원내대표 사퇴 여부와 관계없이 박 대통령과 친박에 대한 여론이 따갑다”며 “조기 레임덕을 막기 위해 여당 내 권력 확보를 시도한 건데, 결국 이것이 레임덕의 가속화를 불러오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의총으로 확인된 친박의 위상
당내 분위기는 지난달 25일 의원총회를 통해 분명히 확인됐다. 유 원내대표 거취 문제와 관련, 40여명의 발언자 가운데 불과 4~5명만이 그의 사퇴를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언급할 만큼 강한 메시지를 건넸지만, 의총 분위기는 차분했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보란 듯이 ‘재신임’ 받았다.
의총뿐만 아니라 당내 곳곳에서도 항명 사태는 잇따라다. 소장파 재선의원 20명은 유 원내대표 사퇴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원내부대표단 14명도 유 원내대표에게 “사퇴하지 말라”는 뜻을 전달했다. 여기에 친이(친이명박)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도 “원내대표 사퇴는 불가하다”며 힘을 실어줬다.
박 대통령이 여당의 원내대표를 통제하지 못한데 이어 당내 재선의원과 원내부대표단까지 통제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커버리지>와 통화에서 “지난 의총에서 몇 명만 사퇴를 언급했고, 대부분 유 원내대표를 지지했다는 것 아니냐”며 “그것이 지금의 당 분위기와 친박의 위상을 잘 말해준다”고 짧게 답했다.
국민 여론도 박 대통령의 레임덕을 부채질하고 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6월 4주차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국회법 개정안’으로 반등했음에도 불구하고 33.6%p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메르스 정국에서는 29%p대까지 추락하는 등 낙폭이 컸다.
반면, 박 대통령과 대척점에 서있는 유 원내대표의 몸값은 뛰었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유 원내대표는 2.0%p 상승한 5.4%p를 기록했다. 김무성 대표(20.2%), 오세훈 전 서울시장(6.2%), 김문수 전 경기지사(5.7%)에 이은 네 번째다.
CBS노컷뉴스가 실시한 유 원내대표 사퇴 관련 여론조사에서는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8.5%로 집계됐다. ‘공감한다’는 답변은 32.9%에 불과했다. 유 원내대표 거취 문제에 대해서도 ‘원내대표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게 나타났다.
보수언론도 박 대통령 등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에 일조한 보수언론도 박 대통령을 등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29일과 30일, 1일에 거쳐 <막장으로 치닫는 與 내분, ‘실패한 정권’ 작정했나>, < 靑·비박, ‘나라 어려운데 무슨 권력 놀음이냐’ 소리 안 들리나>, <경제는 6년 만에 最惡, 권력 싸움에만 골몰하는 靑·여당>라는 제목의 사설을 연달아 게재하며 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준 이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에 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에 이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통령이 여당 위에 군림하는 구시대적·제왕적 리더 모습으로 보이면서 여당은 물론이고 국민 여론도 부정적으로 돌아섰다”고 박 대통령 레임덕을 언급했다.
중앙일보도 <친박의 사퇴압박…누가 납득할까>라는 제목의 30일자 사설을 통해 “(원내대표는) 대통령 입맛에 맞춰 그만둬라 마라 할 대상이 아니다.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사적으로 임명한 부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의원총회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된 원내 사령탑은 의총의 결의로만 교체될 수 있다”며 “사퇴하든 안 하든 그건 전적으로 유 원내대표의 정치적 결단에 맡겨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동아일보 논조도 앞서 두 신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동아일보는 <새누리당, 유승민 사퇴 밀어붙여 ‘박근혜黨’ 만들 텐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유 원내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 확대에 더 열심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지만, 박 대통령도 법안 처리만을 일방적으로 주문했지 소통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친박계는 그러나 박 대통령 레임덕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집권 3년차인 만큼 아직은 이르다는 주장이다. 친박계 핵심 의원은 <커버리지>와 통화에서 “박 대통령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다”며 “지지율 하락은 일시적인 현상일 뿐 레임덕은 천만의 말씀”이라고 이를 부인했다.
그는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지 않을 시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롯해 최고위원 전원이 사퇴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있다”며 “유 원내대표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직 집권 3년차다. 유승민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고 진정되면 지지율은 다시 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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