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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과 김무성, 그리고 박근혜와 친박의 선택지

유승민과 김무성, 그리고 박근혜와 친박의 선택지

‘게임 체인저’ 유승민, 김무성과 친박 명운 가른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파동으로 촉발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29일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갖고 유 원내대표에 대한 거취 문제를 논의했지만 끝내 결론내지 못했다.

일단 유 원내대표에게 고민할 시간을 줬지만, 본인 스스로 “사퇴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 만큼 이 문제가 의원총회에 부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되면 지난 25일 의총에서 한 차례 ‘재신임’ 받은 바와 같이 또 다시 ‘신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박 대통령의 ‘교시’를 받은 친박(친박근혜)계는 유 원내대표 사퇴를 강하게 압박했다. 하지만 비박(비박근혜)계 역시 ‘유승민 지키기’로 맞서면서 양 계파 간 대결양상은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유 원내대표 거취 문제는 정치공학적 이해관계가 다양하게 얽힌 ‘게임 체인저(정국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변수)’로 주목된다. 누가 승기를 잡느냐에 따라 향후 정국의 흐름이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의미다.


먼저, 비박계가 승기를 잡을 경우 친박의 쇠퇴와 함께 박 대통령 레임덕이 가속화될 수 있다. 반면, 박 대통령 요구대로 유 원내대표가 사퇴할 시 친박의 입지 강화는 물론 총선 정국을 앞두고 친박의 결속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사진=새누리당)

#1. 유승민의 선택지

‘소신이냐, 현실이냐’


유 원내대표는 현재 ‘소신’과 ‘현실’ 사이에서 적잖은 고민을 하고 있다. 당초 ‘끝까지 가겠다’는 강경 입장에서 ‘고민하겠다’는 유연한 자세를 취한 것도 이를 잘 방증한다.


유 원내대표의 지역구는 대구 동구을이다. 대구는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곳이다. 또 친박계 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유 원내대표 선택은 향후 자신의 정치 행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커버리지>와 만난 자리에서 “대구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라며 “지역구를 옮긴다면 모를까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지 않은 채 대구에서 계속 정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어쨌든 대구사람들 뇌리에 ‘배신’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는 만큼 유 원내대표에게도 적잖은 부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당선된 뒤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이라며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대구시민에게 보내는 유 원내대표에 대한 일종의 메시지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다음 총선에서 심판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구 민심이 박 대통령을 등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호남에서 줄줄이 낙마한 경험이 있고,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전 의원도 2008년 재보선에서 무소속으로 호남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바 있다. 모든 것이 절대적일 순 없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유 원내대표가 자진 사퇴할 경우 초라한 뒷모습만 남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역 정가에 밝은 한 인사는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자진 사퇴할 경우 20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더 다는 것에 불과하다”며 “그걸로 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 스스로 자기 정치에 대한 미래를 고민할 때”라며 “나아가느냐, 도태되느냐는 이번 기회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현재 당 안팎에선 이번 기회에 ‘자기 정치’를 가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역 민심은 일단 유 원내대표의 손을 들어주는 듯하다. CBS노컷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지난 27~28일 양일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친박계의 ‘유승민 사퇴’ 주장에 대해 대구경북(TK) 응답자의 58.2%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 원내대표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우)와 유승민 원내대표.(사진=새누리당)

#2. 김무성의 선택지

‘아직은 전쟁 치를 때 아냐’


김 대표 입장에선 이렇다 할 카드가 마땅치 않다. 김 대표는 그간 의원들 뜻을 앞세워 유 원내대표의 재신임을 이끌어냈다. 이날 긴급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유 원내대표 거취의 최종 결정은 최고위가 아닌 의총”이라고 말한 것도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노골적인 반대와 친박계의 거듭된 사퇴 요구에 김 대표가 용단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더욱이 친박 최고위원들의 전원 사퇴로 김 대표 체제가 와해될 수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김 대표는 유 원내대표에게 “청와대와 싸워서 끝까지 맞설 수 있겠느냐”는 취지의 얘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자진 사퇴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이다.


유 원내대표 다음 타깃은 김 대표일 수밖에 없다. 김무성-유승민 체제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친박 쪽에서 총선을 앞두고 김무성 체제 흔들기를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물론 김 대표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유 원내대표를 방패삼아 총선 국면을 맞으려 했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은 결코 녹록치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김 대표가 마냥 불리한 것만도 아니다. 일단 당심(黨心)이 김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는 지난 25일 의원총회에서 확인됐다. 40여명의 발언자 가운데 유 원내대표 사퇴를 주장한 의원은 5명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차기 원내대표 선출도 비박계가 될 공산이 크다. 김 대표로선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일단 당심이 친박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유 원내대표가 사퇴해도 차기 원내지도부는 비박 진영에서 잡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렇게 되면 친박의 입지는 또 다시 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번 사태를 통해 친박이 언제든 김무성 체제를 흔들 수 있음을 보여준 만큼 새 원내지도부가 출범해도 당분간 당청 간 관계회복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명분을 주지 않은 채 ‘다음’을 준비할 것이란 분석이다. 김 대표 입장에선 아직 ‘전쟁’을 치를 때가 아닌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가운데)과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사진=청와대)

#3. 박 대통령과 친박의 선택지

‘이것 참 만만치 않구만…’

 

지금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애가 타는 쪽은 박 대통령과 친박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김 대표에게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지도부를 흔들 순 없다. 만약 그럴 경우 부메랑이 되어 친박이 직격탄을 맞을 수도 있다. 이미 여론이나 당심은 친박을 등지고 있다.


여기에 김 대표가 ‘유승민 사태’에 따른 학습효과를 얻은 만큼 더더욱 틈을 보이지 않으려 할 것이다. 공천 주도권을 쥐어야하는 친박 입장에선 여러모로 애가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친박의 가장 큰 무기는 5명의 최고위원이다. 김 대표를 제외한 서청원 김태호 이인제 김을동 이정현 최고위원 모두가 유 원내대표 사퇴에 공감하며 의기투합한 상태다. 만약, 이들 5명이 동반 사퇴할 경우 김무성 체제는 무너지게 된다.


친박 진영에선 의총 소집을 위한 정족수(16명)을 이미 채운 상태다. 유 원내대표에게 자진 사퇴의 시간을 준 뒤 여차하면 7월1일 의총을 열어 강제로 끌어내리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불신임’을 예단하긴 어렵다. 이미 지난 의총에서 한 차례 재신임 받은 터라 친박이 마냥 안심할 수 없는 분위기다.


현재 유 원내대표 거취와 관련, 최고위에서 결정할 것인지 아니면 의원총회에서 결정할 것인지를 놓고 최고위원 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긴급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나 “(유 원내대표 거취 문제가) 최고위에서 (결론을 내고) 끝낼 일인지, 의원총회에서 끝낼 일인지는 최고위원 간 이견이 있었다”고 했다.

다만, 김 대표는 줄곧 “의총을 통해 결정할 문제”라고 강조한 점을 미뤄볼 때 친박 진영이 ‘최고위 결정’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의총을 통한 표결에 붙여질 경우 ‘재신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유 원내대표 사퇴가 불발될 시 박 대통령이나 친박 입장에선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된다. 자존심도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더욱이 향후 있을 총선 정국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도 어려워진다. 집권 3년차, 아직은 당내 ‘친박의 힘’이 건재하다는 것을 유 원내대표 사퇴를 통해 반드시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