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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자의 끄적끄적] 심리학으로 본 ‘인분교수’ 사건

[정기자의 끄적끄적] 심리학으로 본 ‘인분교수’ 사태

권위에 대한 복종과 인간군상…그들은 왜 ‘불합리한 지시’에 복종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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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분교수’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의 엽기적인 행각이 드러나면서 세상은 공분했고, 또한 분노했다. 가해자인 경기도 용인소재 K대학 장모(52) 교수는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이용해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질렀다. 그리고 대학교수가 되고자 했던 29살 꿈 많은 청년은 말 못할 고통과 아픔을 감수해야만 했다.

 

디자인 분야 권위자인 장 교수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한 디자인협회에 제자인 A씨(남·29)를 취업시켰다. 그런 뒤 일 처리가 매끄럽지 않다며, 또는 작업 실수를 저질렀다며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다. 야구방망이로 체벌하던 것은 얼굴에 호신용 스프레이 뿌리기, 인분 먹이기 등의 엽기적인 행각으로 변질됐다.

 

그런데 장 교수의 기막힌 행위에 그의 제자들이 동참한 것이 알려지면서 또 한 번 우리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협회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직원들까지 가세해 수년간 A씨를 폭언 및 폭행한 것이다.

 

△이른바 ‘인분교수’로 불리는 장모 교수와 그의 제자들이 피해자를 가운데 두고 나눈 카카오톡 대화.

‘불합리한 지시’에 복종한 인간의 군상

 

연이은 폭행으로 전치 6주의 상해를 입고 입원한 뒤 수술을 받게 되자 더 이상 물리적 폭행이 어렵다고 판단한 가해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A씨를 고문하기 시작한다.

 

장 교수가 A씨의 손발을 묶고 얼굴에 비닐봉지를 씌운 채 산성이 강한 호신용 스프레이를 40여 차례에 걸쳐 얼굴에 쏠 당시 그의 또 다른 제자(직원)들은 발버둥치는 A씨를 붙들고 있었다. A씨는 2도 화상을 입은 채 피부가 녹아내렸다.

 

가해자들은 A씨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24시간 감시하기도 했다. 1년 중 명절 당일만 고향 집에 가도록 했고, 부모님께 오는 전화는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게 하거나 녹음을 시켰다. 때로는 휴대폰을 압수했다.  

 

외출 중인 장 교수는 아프리카TV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폭행 장면을 실시간 확인했다. 실제 가해자 김모씨가 A씨를 구타하는 장면이 그대로 방송됐다. 또 카카오톡 단체방에는 “쓰사(슬리퍼로 따귀 때리기) OO대”라는 식으로 폭행을 지시했고, 지시를 받은 직원은 “알겠습니다” “네, 교수님”이라며 이에 응했다. 교수의 지시에 따라 어김없이 폭행은 이어졌다.

 

장 교수는 또 다른 가해자들의 인분을 페트병에 담아 “포도주라고 생각하고 먹으라”며 A씨에게 10여 차례 강제로 먹였다. 물론 이 자리에도 그의 친절한 제자들은 함께했다. 가혹행위에 가담한 제자는 김모씨(남·대학강사·29)와 장모씨(여·대학생·25) 그리고 정모씨(여·대학원생·27)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모씨는 A씨의 대학동기였고, 다른 가해자 모두 A씨의 후배이자 동생들이다.

 

△밀그램의 ‘복종실험’. E=는 연구자 T=교사 L=학생(배우)이다.(사진=위키백과)

‘권위에 대한 복종’…밀그램의 ‘복종실험’

 

상식적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비합리적 권위에 복종하는 예를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쟁 중 군인들에 의한 대대적인 민간인학살이나 권력을 부여잡기 위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독재자와 그의 추종자들도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세상과 격리돼야 할 ‘돌+아이’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암약해있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이다. 지난해 발생한 ‘김해 여고생 살해사건’이나 ‘윤일병 사건’ 등도 마찬가지다.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인분교수’ 사건에 대해 “심리학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이 벌어졌다”고 경악스러워 했다. 그러면서 “과거 권위에 대한 복종실험이나 순종실험 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 초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2차 대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나치의 명령에 복종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자 일반인을 대상으로 권력에 대한 복종실험을 실시한 바 있다.

 

지원자들은 교사와 학생군으로 분류됐고, 교사가 낸 문제를 학생이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기의 전압을 15볼트씩 올리도록 했다. 물론 충격기는 가짜였고, 지원자들은 이를 몰랐다. 또한 학습자(학생)는 밀그램이 섭외한 배우였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밀그램의 불합리한 지시와 통제 속에 실험자의 65%가 최고수치인 450V까지 전기충격기를 올린 것이다. 학습자(배우)가 고통스런 소리를 낼 경우 즉각 실험을 포기할 것이란 예측은 빗나갔다. 살려달라는 학생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밀그램의 말에 피험자들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전기를 흘려보냈다.

 

심지어 전기충격이 주어지는 판에 손을 떼지 못하도록 한 실험에서도 피험자의 30%는 연구자의 명령에 따라 학생의 손을 강제로 붙잡았다. 밀그램은 자신의 저서 <권위에 대한 복종>에서 ‘복종실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놀라운 것은 (피험자들이) 실험자의 지시에 너무나 기꺼이 따른다는 점이다. 실제로 실험의 결과는 놀랍고도 당혹스럽다. 많은 피험자들이 스트레스를 느끼고 실험자에게 항의를 하지만, 상당수의 피험자가 전기충격기의 마지막 단계까지 계속한다”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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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 wikia.com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1933년 미국 뉴욕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매우 명석한 두뇌를 소유한 밀그램은 뉴욕 소재 퀸스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였고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취득한 후 그는 뉴욕시립대학에서 정년 교수가 되었다.

젊은 시절 그의 머리를 지배한 것은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가능케 한 아이히만 등의 심리상태였다. 어떻게 그와 같은 복종이 가능할까. 어떻게 그런 순종적인 인간이 나올 수 있을까.

그가 학위 논문에서 다룬 실험은 바로 그런 의문을 풀기 위한 시도였다. 1963년 그는 복종에 대한 실험을 마치고 세상에 ‘복종의 행태적 연구’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한다. 이 실험은 미국의 심리학계에 큰 충격을 일으켰고 밀그램을 일약 유명 인사로 등극시키는 데 계기가 되었다. 10년 후 밀그램은 이 논문에 기초하여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는 이름의 책을 출판한다.

밀그램은 복종에 대한 심리 실험 이외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는 이유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여섯 사람만 거치면 모두 연관을 맺고 있다는 ‘6단계 분리이론’ 등도 연구했다.

밀그램은 심장마비로 1984년 51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사망했다.

 

‘교도소 실험’, 절대적 권위에 굴복한 인간

 

피해자 A씨는 “사람이 매일 그렇게 맞게 되면 머릿속이 바보가 된다”고 털어놨다. 또 가해자들이 자신을 “현대판 노예처럼 부려왔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탈출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교수에 대한 꿈, 그리고 1억3천만원의 공증각서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를 상담한 사회복지사는 “지속적인 세뇌로 본인이 잘못해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결국, 외적 요인과 함께 본인 스스로도 가해자들의 절대적인 권위에 굴복당한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교수인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는 ‘교도소 실험’을 통해 강압적인 특수 환경에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이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관찰했다.

 

모의감옥에서 피험자들은 교도관과 죄수로 나뉘었고, 각각의 역할을 수행토록 했다. 어색하던 분위기와 달리 교도관들은 죄수를 통제하기 시작했고, 점점 고압적으로 변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도관의 행위는 악랄해졌고, 통제 불능 사태가 돼버렸다. 실험 5일째에는 성적 고문까지 이어졌다. 강하게 저항하던 죄수들은 저항력을 상실했고, 간수들의 권위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실험은 6일 만에 중단됐다. ‘교도소 실험’은 영화 <엑스페리먼트>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한나 아렌트의 저서 ‘인간의 조건’ 겉표지

‘생각하지 않는 인간’…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가담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통해 ‘악의 평범성’이란 철학적 개념을 정립했다.

 

그는 아이히만을 ‘생각할 능력이 없는’ 평범한 관료라고 인식했다. 또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한 아이히만에게서 관료제적 타성과 인습적 관례에 따른 단순한 ‘명령수행자’라고 정의 내렸다.

 

즉, 유대인을 학살한 악마나 악인이 아닌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자 충실한 관료였다는 얘기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한니발 렉터 박사를 바라보는 스털링 요원처럼 아렌트의 눈에 아이히만은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악은 이러한 평범하고 일반적인 상황에서 나오는 것임을 아렌트는 강조한다.

 

‘인분교수’ 사건의 가해자 김모씨는 피해자 A씨의 친구이자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지낸 인물이다. 또 다른 가해자 정씨는 친구에게 캐리커처를 그려주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이들 모두 대학교육까지 받은 지극히 상식과 이성, 지성을 갖고 있는 자들이다. 하지만 장 교수의 불합리한 지시와 권위에 복종했고, 경악스런 범죄에 무뎌졌다. 그리고 어느 샌가 이들 스스로 즐겼다. 타의가 아닌 자의가 되어버린 것이다.

 

아렌트는 자신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생각하지 않는 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정치적 자유가 있는 곳에서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고 흔히 그렇게들 한다. 하지만 저명한 학자들이 말하는 것과 달리, ‘생각하도록’ 하는 힘은 인간의 능력에 비해 가장 약하다. 폭정 아래에서는 생각하는 것보다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물론, 아렌트가 법정에 선 아이히만의 연기에 속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악의 평범성’을 통해 평범한 사람의 악이야말로 인간을 파괴하는 결정적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 아렌트의 주장은 우리 안에 ‘또 다른 아이히만’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충격을 주고 있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