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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무거워진 최동훈의 ‘암살’…“독립군 잊으면 안 돼”

[리뷰] 무거워진 최동훈의 ‘암살’…“독립군 잊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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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메인 포스터 사진/쇼박스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부터 <타짜>, <전우치>, <도둑들>까지 최동훈 감독의 기존 작품을 사람에 빗대자면 ‘가볍고 유쾌한 남자’라 표현할 수 있겠다. 세련된 유머감각으로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즐겁게 할 준비가 된 남자, 때로는 차가운 분위기도 가벼운 유머로 녹여낼 줄 아는 ‘아이스 브레이커’다. 그러면서도 피할 수 없는 슬픔에 대해서는 아픔을 적절히 표현할 줄도 안다. 때와 상황에 맞는 유연한 두 얼굴을 적재적소에 드러내는 남자의 이미지가 바로 최동훈표 영화의 이미지다.

 

하지만 이번 <암살>이라는 남자는 조금 다르다. 가만히 침묵하다 임팩트 있는 한 방으로 분위기를 사로잡는다. 행동 하나하나마다 이유가 있고 무게감이 있다. 진지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힘줄 줄 아는 남자다. 일제강점기 1933년을 배경으로 한 이 ‘남자’는 확실히 기존 ‘남자들’보다 무겁고 어렵다.

 

기존 네 작품과 <암살>의 공통 키워드는 복수다. 박신양이 백윤식을, 조승우가 김윤석·김혜수를, 강동원이 김윤석을, 김윤석이 홍콩 마피아 수장을 상대로 벌이는 복수라는 코드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암살>에서도 등장한다. 하지만 기존 작품이 개인의 복수심에서 발현된 싸움이라면, 이번에는 조국을 되찾겠다는 대의가 포함된다. 독립군이 친일파와 일본 군부에 복수하는 내용이 영화의 중요한 줄기를 이룬다.

 

영화에서 안옥윤(전지현 분)을 두고 3000불이라 말하는 영감(오달수 분)의 “3000불, 우리 잊으면 안 돼”라는 대사는 영화를 관통하는 한 마디다. 최 감독은 비극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맞서 싸웠지만,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영화를 시작했다고 한다. 최 감독은 그 고마움을 노골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영화에 투영한다.

 

 

 

◇조진웅, 전지현, 최덕문(왼쪽부터)이 <암살>에서 의열단원으로 등장한다. 사진/쇼박스
 

영화가 배경으로 하는 1933년은 조선이 나라를 빼앗긴 뒤 20여 년이 지난 시기다. 문화 통치로 국민 다수가 일본에 대한 거부감을 덜어낸 시기, 누군가에게는 조선 8도가 조선인지 일본인지 구분이 정확히 되지 않는 시기다. 수십 년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변절이 급격히 늘어난 때이기도 하다. <암살>은 그런 시기에 여전히 내 나라는 ‘조선’이라는 신념을 품은 채 목숨을 걸고 일본과 맞붙은 독립군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지옥과 같았던 역사를 팩션으로 되짚는 작업이기 때문인지 최 감독은 느리고 친절하게 이야기를 푼다. 1910년 초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총독을 암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치면서 105명의 독립 운동가들이 체포된 ‘105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오프닝부터 변절을 한 남자가 의열단원 셋을 모으는 과정, 의열단의 암살 작전과 해방이 된 후에도 달라진 게 없는 1949년 대한민국의 모습까지 이야기꾼 최 감독은 실제 있었을 법한 내용들을 가상으로 그린다.

 

백범 김구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조승우 분), 신흥무관학교 등 실제 역사를 묘사하기도 하지만, 그 밖의 인물들은 실제 존재했을 것만 같은 가상의 인물들로 채운다. 이 때문에 영화의 분위기는 판타지와 실화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듯 오묘하다. 특히 1930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당시 명치정(명동) 소재의 미츠코시 백화점(현 신세계 백화점 위치)과 경성의 거리는 그 시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180억원이 아깝지 않은 그림이다.

 

◇<암살> 중 한 장면. 사진/쇼박스
 

최 감독은 지난 13일 언론시사회에서 이 영화의 공을 배우들에게 돌렸다. 배우들이 아니었다면 <암살>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최 감독의 설명이다. 취재진 사이에서 최 감독이 공을 돌릴 만하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암살>은 배우들의 잔치였다.

 

영화 초중반부터 이야기를 끌어가는 안옥윤 역의 전지현에게 <암살>은 필모그래피의 중요한 한 줄이 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야기의 중심이 돼 흐트러짐 없이 감정선을 소화하고 다소 거칠어 보이는 액션도 훌륭히 해낸다. 전지현은 영화 <베를린>과 SBS <별에서 온 그대>에서의 두 얼굴을 <암살>에서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수놓는다. 올 겨울 시상식장의 ‘여우’로서도 손색이 없을 수준이다.

 

이정재는 데뷔 이래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신세계>와 <관상>을 거치며 연기력이 점점 발전한다는 평가를 받은 이정재는 <암살>을 통해 연기력을 입증한다. 특히 후반부 할아버지가 된 염석진을 연기하는 이정재의 1분여 장면은 이 영화 중 최고의 장면이라 할 만하다.

 

◇<암살>에서 뛰어난 연기를 펼친 이정재. 사진/쇼박스
 

애국심보다는 돈이 먼저인 살인청부업자 하와이피스톨을 연기한 하정우 역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서부영화를 연상시키는 의상과 낭만적인 대사와 눈빛이 어우러지면서 역대 가장 멋있고 섹시한 하정우가 탄생했다. 비중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정우가 이 역할을 택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외에도 모범적인 독립군 황덕삼 역의 최덕문 또한 뚜렷한 이미지를 영화 속에 새긴다. <도둑들>에서 중국 게이로 등장한 그가 <암살>에서 보여주는 독립군 연기에서는 연극배우로서의 오랜 경륜이 묻어난다. 등장하는 장면마다 임팩트를 남긴 속사포 역의 조진웅은 분량이 적은 게 아쉬울 정도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오달수, 경박해진 이경영, 사악한 눈빛의 친일파 사사키 역의 김의성까지 배우들로 인해 영화는 풍성해진다.

 

러닝타임이 2시간 20분에 달하고 복잡한 스토리가 이어지며, 기존 최동훈의 영화보다는 다소 느린 템포라 중간 중간 지루함이 느껴질 수 있다. <도둑들>과 <전우치> 가운데 지점쯤 된다. 영화 말미의 경우 최 감독답지 않은 구태의연한 장면도 더러 보이기는 한다. 출생의 비밀 이야기는 다소 억지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운이 남는 메시지와 최동훈 특유의 유머, 배우들의 연기력, 화려한 스케일 등 단점보다 장점이 월등히 많다. 올해 천만 관객을 모을 첫 영화라고 감히 미리 짐작해본다. 상영시간 140분. 7월 22일 개봉.

 


원문: 뉴스토마토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