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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보다 어려운 것이 선거구제 개편’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지역구 사수를 위한 여야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히다보니 합의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의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핵심 쟁점인 의원정수와 비례대표 비율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여야 모두 의석수 변화에 따른 계산기를 두들기느라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현재 정개특위에 △독일식 비례대표제(또는 광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 △의원정수(지역구-비례의원) 문제 △선거구 획정 기준에 대한 절충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이 때문에 20대 총선 역시 현행대로 치르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큰 틀에서 선거구제 개편에 동의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말 현 선거구제에 대한 헌재의 위헌결정에 이어 중앙선관위에서도 지역구와 비례대표 간 의원 비율을 ‘2 대 1’로 조정할 것을 권고해 어떤 식으로든 개편은 불가피한 상태다.
△사진=커버리지 |
與-野, 선거구제 개편에 따른 의석수 변화
문제는 방식이다. 어떤 식의 룰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의석수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새누리당의 과반의석이 깨지는가하면, 군소정당에 머물던 진보정당은 교섭단체 조건인 20석 이상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새정치연합은 비례대표 확대를 요구 중이다. 이를 통해 영남에서 새정치연합 의원이, 호남에서 새누리당 의원이 배출될 수 있도록 지역주의 해소의 구조적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위원장 김상곤) 5차 혁신안 발표에 따르면 현 지역구 의원 246명을 유지한 채 중앙선관위가 제시한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비율 ‘2 대 1’을 적용해 지역구 246명, 비례대표 123명을 더해 정수를 확대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적지 않다. 실제 28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세비 삭감을 전제로 의원정수를 확대하는 것에 대해 ‘반대’ 응답이 57.6%로 찬성(27.3%)의 2배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은 이러한 국민 정서를 감안해 300석(지역구 246석+비례대표 54석)의 현행을 유지하되, 대신 지역구 의원을 늘리고, 비례대표 의원수를 줄이는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지역주의에 편승한 특정 정당의 독과점 형태가 고착화되는 문제점이 있다. 거대 양당, 특히 새누리당(영-호남 인구수 비례)에 유리한 룰이란 얘기다.
이를 반영하듯 29일자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기득권 유지 구조를 허물기 위해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대’(30.7%)보다 ‘찬성’이 57.2%로 훨씬 더 높게 나타난 것으로 집계됐다. 결과적으로 의원 증대는 반대하나, 비례의원 확대에는 찬성하고 있는 셈이다.
△사진=리얼미터 |
“현행 선거구제, 새누리당이 최대 수혜자”
이런 가운데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 시 새누리당의 단독 과반수 의석이 무너질 것이라는 당 내부 문건이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현행 선거구제 유지가 ‘표 계산’에 따른 당리당략이었다는 의미다.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는 ‘제19대 총선에 적용해본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시뮬레이션’ 보고서를 통해 “새누리당은 현재 지역구 비례대표 병렬식 선거제도, 소선거구제 하에서 과대 대표되는 정도가 가장 큰 정당”이라고 스스로 분석했다.
또한 “현행 선거구제는 새누리당이 최대 수혜자”라는 내용과 함께 비례의원을 확대할 경우 새정치연합이나 진보정당의 의석수가 늘어나면서 “새누리당의 과반석은 불확실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19대 총선에 적용해본 결과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의석점유율은 각각 평균 3.98%, 3.44%씩 감소한 반면, 통합진보당은 6.0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결국 정책이나 법안의 야권연대가 이뤄질 경우 지금과 같이 새누리당의 밀어붙이기식 법안통과가 어려워짐을 의미한다.
독일식 ‘정당명부제’ 어렵다? 핵심은 ‘정당득표율=의석수’
현재 선거구제 개편에 앞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독일식 정당명부제다. 이는 ‘정당의 득표율’ 만큼 의석수를 차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가장 잘 반영된 구조라는 평가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1인 2표제(제1투표는 지역구 후보, 제2투표는 선호하는 정당)를 행사하지만,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대한 의석을 독립적으로 배분한 우리와 달리 제2투표(정당 투표)에서 얻은 득표율에 따라 각 정당별 전체 의석수가 결정된다. 즉, 지역구 의원 선출보다 지지정당 투표가 우선시 되는 것이다.
다만, 비례투표보다 지역구 의원이 더 많이 선출될 경우 ‘초과의석(Ueberhangmandate)’이라고 하여 이를 그대로 인정하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국회의원 재직수가 매번 차이를 보인다.
이를 테면 지역구 의원 100명을 뽑는다고 가정할 때 A당이 50석, B당이 30석, C당이 20석을 차지한 반면, 지지정당 투표에서는 A당이 20%, B당이 50%, C당이 30%의 지지율을 얻었다고 하면, 결국 지지정당 투표를 중시 여겨 B당은 50석(지역구 30석+비례대표 20석), C당은 30석(지역구 20석+비례대표 10석)을 차지하는 것이다.
반면, A당의 경우 정당투표에서는 비록 20%를 차지했지만, 지역구에서 50석을 얻은 만큼 이를 모두 인정해 지역구 의원 50석을 그대로 반영하는 구조다. 이렇게 되면 의석수는 당초 100석에서 130석으로 늘어나게 된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승자독식의 현 양당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안으로 제시됐다. 실제 군소정당의 의석수가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옴으로써 권력이 분산되고, 다양한 정당의 연정 또한 가능하다. 아울러 특정 정당이 50% 이상의 지지율을 획득하기 어려워 거대정당의 출현도 방지된다. 이는 앞서 언급한 19대 총선 결과 시뮬레이션 결과가 잘 말해준다.
△19대 총선 결과표. 새누리당(붉은색)이 과반석 이상을 차지한 모습이 눈에 띈다. |
지역구는 현행대로…비례만 조정?
새정치연합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는 비례대표 확대를 통해 의석수 조정을 기대하고 있다. 즉,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조금이나마 맞춰보겠다는 얘기다.
반면, 새누리당은 ‘승자독식’의 현행 소선거구제를 원하고 있다. 여기에 비례의원 축소를 통해 ‘게임의 룰’을 좀 더 유리하게 이끌려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헌재는 현행 선거구제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서 20대 총선 전인 2015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못 박았다. 어쨌든 발 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헌재 판결에 따르면 선거구 간 인구편차를 현행 ‘3 대 1’(지역구 246명, 비례대표 54명)에서 최소한 ‘2 대 1’(지역구 200명, 비례대표 100명) 이하로 바꿔야 한다. 지역구 246곳 가운데 62곳(비례대표를 100석으로 할 경우 46곳)의 선거구를 나누거나 합쳐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되면 인구수가 적은 농촌지역 몇 개 시군이 통폐합된다는 점에서 영-호남과 강원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니 양당 모두 지역구 의원에 대한 축소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만만한 비례의원 조정 얘기만 꺼내는 것이다. 결국, 이를 복기하면 양쪽 다 자신의 기득권을 내주지 않은 채 선거구제 개편에 따른 ‘득실’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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