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봄볕 깃드는 예산 수덕사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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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 절집에 머물렀다던 고 최인호 선생의 책 몇 권을 들고 떠난다. 이미 떠나간 선생이 걸었을 길을 따라 가는 여정이다. 어쩌면 늘 안고 가는 숙제, ‘길 없는 길’에 대한 답을 얻는 길이 될 지도 모른다. 한동안 무위의 나날을 보내던 때에, 선생 역시 앞서간 선지자의 걸음을 따라 이 길을 걸었다고 했다. 생전의 선생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매일 한 줌의 맑은 바람이나, 한 잔의 맑은 정화수를 전하고’자 했다.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無事猶成事)’이라던 선승의 화두를 들고, 선생이 처음 수덕사를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길을 돌아 본래의 천연한 나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 무게가 꽤나 되는 네 권의 책을 부득불 배낭에 꾸려 넣게 된 이유다. 길 없는 길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수덕사 주변 풍경.(사진=이강)
길 없는 길, 그 걸음을 따라서
△수덕사 경내 전경.(사진=이강)
산문 밖의 주차장에 차를 놓아두고 ‘덕숭산덕숭총림수덕사’란 한글 현판이 걸린 덕숭선문을 오른다. 바람 자락이 떠나지 않은 산사의 그늘에는 봄이 채 이르지 못하고 있다. 선문을 지나 일주문으로 천천히 오르니, 그제야 아침볕이 산허리를 넘어 길을 비춘다. 선생은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이란 경허 스님의 선시를 마음에 품고, 경허 선사의 볕과 그림자를 좇아 산사에 올랐었다. 선문에 드니 오른 편으로 수덕사선미술관과 수덕여관이 차례로 나타난다. 왼편으로 원담 스님의 부도와 부도전이 그늘에 자리하고, 해탈교를 건너자 국내 최초의 불교미술관인 수덕사선미술관이 양명하다. 잠시 수덕여관의 마루턱에 앉았다가 일주문으로 오른다. 긴 연휴 동안의 산사는 고요하고 적막하다. 산행을 즐기는 산행객들과 오직 불심만으로 산길을 오르는 늙은 어머니들의 굳어진 걸음이 길을 오갈 뿐이다. 어머니들의 걸음을 따라 ‘동방제일선원’이라 쓰여진 일주문을 들어선다. 최인호 선생이 정신적 목마름을 해갈하기 위해 치열하게 매달렸던 길을 들어서는 순간이다.
△수덕사 대웅전.(사진=이강)
대웅전과 앞마당의 금강보탑과 삼층석탑, 기도효험이 잘 알려져 많은 불자들이 찾는다는 관음전과 관음암까지 둘러본다. 수덕사 대웅전은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다. 1308년으로 건립 연대가 확실해 우리나라 고건축의 기준이 되는 건축물로 고려시대 건물 중 특이하게 백제식 곡선을 보이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빛이 바랜 후 단청을 새로 올리지 않은 대웅전의 아름다움은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절제미로 불교미학의 정수라 알려져 있다. 덕숭산 자락의 산세와 어우러진 맞배지붕, 화려하지 않은 기와의 배열 역시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수평적인 공간감의 완성이다. 다소 지루할 수 있는데, 이와 대비를 이루는 것은 대웅전 앞마당의 금강보탐과 삼층석탑의 배치다. 두 탑은 단조로운 공간에 솟구치는 기백을 불어넣는다. 삼층 석탑은 신라 문무왕 5년에 건립되어 원효대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진다. 통일신라의 양식을 지닌 고려 초기 석탑이다. 수덕사는 차분하고 진중하여 가볍지 않은데, 이 또한 진중하면서도 간결한 건축미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덕숭산 정상으로 향하는 1080계단을 오르니 일체의 머무름도, 일체의 걸림도 없었던 선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원문: 뉴스토마토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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