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vs 국민의당, 패자(覇者)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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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에 이르는 중국 고대의 변혁기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한다. 견융족에 의해 주나라 도읍이 동주로 옮겨지면서 왕실은 극도로 쇠망했고, 봉건제는 약화됐으며, 철제 무기로 무장한 군웅이 할거하면서 춘추전국시대의 패자(覇者·제후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한 치열한 혈투가 벌어졌다. 그 결과 전국 칠웅이라 불리는 진, 초, 제, 연, 조, 위, 한이 대립했고, 이후 진이 중국을 통일함으로써 최초의 시황제가 탄생했다.
최근 야권의 정치상황을 빗대 춘추전국시대라고 말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새정치민주연합을 박차고 나온 천정배 의원과 안철수 의원, 그리고 박주선 의원 등이 각 세를 구축하며 ‘야권의 패자’가 되기 위한 물밑 전쟁이 한창이다. 여기에 동교동계를 위시한 박지원 전 원내대표와 김민석 전 의원의 민주당, 박준영 전 전남지사의 신민당 등 원외정당까지 뛰어들었다. 이미 박 전 지사와 김 전 의원은 24일 통합을 결정한 상태다.
기원전 5세기 춘추오패의 하나인 진(晉)이 왕권을 둘러싼 내분으로 한, 위, 조로 3등분 됐듯, 더불어민주당 역시 친노패권에 대한 반목과 불신으로 갈기갈기 찢겼고, 진나라를 제외한 6개국이 동맹한 것처럼 이들은 통합과 연대를 통해 더불어민주당과의 담판을 준비하고 있다. 3개월 앞으로 다가온 4월 총선에서다.
△지난 25일 안철수 의원이 추진하는 ‘국민의당’과 천정배 의원이 중심인 ‘국민회의’가 전격적으로 합당을 선언했다.(사진=천정배 의원 공식 트위터) |
롤러코스터 탄 야당…어지러운 합종연횡
현재 야당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 마냥 어지럽고 복잡하다. 여기에 합종연횡을 통한 눈치싸움 역시 뜨겁다. 지지율의 진폭 또한 크며, 여론은 수시로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서로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후에라도 찾아올 ‘빈틈’과 ‘반격’을 노리는데 집중하고 있다.
뉴DJ를 선언하며 호남정치 복원을 내세운 천정배 의원이 국민회의(가칭)를 출범시켰지만, 안철수 의원의 탈당과 국민의당(가칭) 창당으로 야권 정계개편의 주도권은 천 의원에서 안 의원 중심으로 순식간에 넘어갔다.
안철수 세력의 흡수를 기대했던 천 의원 측은 되레 안철수 신당에 흡수되는 상황을 걱정해야 했다. 그렇게 택한 것이 박주선 의원과의 연대다. 천 의원과 박 의원 측 모두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실제 천정배-안철수 합당 선언 이틀 전인 23일 천정배, 박주선, 그리고 정동영 전 의원은 ‘3자 연대’를 합의한 바 있다.
허나 정치는 생물,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국민의당 내부의 ‘완력다툼’과 ‘이승만 국부론’이다. 지지율의 변화는 호남에서부터 찾아왔고, 차가운 냉대가 쏟아졌다.
<한국갤럽>이 지난 22일 발표한 주간정례조사에서 국민의당에 대한 광주전남지역 지지율은 지난주 30%에서 26%까지 추가하락 하면서, 전주와 동일한 더불어민주당(32%)에 2주 연속 1위 자리를 내줬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안철수 신당은 호남에서 41%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19%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을 큰 폭으로 따돌리고 있었다.
원내 교섭단체를 자신했던 국민의당에 브레이크가 걸리면서 분위기는 또 한 번 천 의원에게 돌아갔고, 그의 몸값도 덩달아 뛰었다. 하지만 ‘천정배 신당’의 창당 원심력은 이미 힘을 잃은 상태였다. 결국, 반전의 모멘텀을 찾지 못한 이들의 선택은 연대와 통합이다.
천정배-안철수 양측은 25일 ‘당대당’ 통합 대신, 창당 준비과정에서부터 함께하는 ‘준 정당 상태의 통합’을 선언했다. 당명은 안 의원의 ‘국민의당’으로 결정한 대신, ‘우클릭 비판’을 의식한 듯 강령은 천 의원에게 상당부분 양보했다. 결과적으로 양당이 처한 수세 국면의 출구를 합당을 통해 얻은 셈이 됐다.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좌)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의원.(사진=더불어민주당) |
소통합 뒤 대통합, 결국 ‘더민주 vs 국민의당’
문재인 대표가 이끈 더불어민주당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김종인 선대위원장을 영입하며 당 전반의 변화를 꾀했다. 여기에 문 대표 스스로 사퇴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만나 범야권 총선 전략협의체 구성을 합의하며 ‘천정배-안철수 연대’에 맞불까지 놨다. 탈당 움직임은 잦아들었고, 박영선 전 원내대표까지 잔류하기로 결정하면서 당은 안정세를 보였다.
탈당파들은 지지부진했다. 안 의원의 우클릭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일강다약(一强多弱)의 구도 속에서 야권발(發) 정계개편은커녕,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만 안겨주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커졌다.
천정배-안철수 의원의 통합 선언은 지지율 회복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물론 신당의 동력을 꾀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호남의 여타 신당 추진 세력에게는 적잖은 충격파였다. 당장 박주선 의원이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박 의원은 “천 의원과 안 의원 중심의 국민의당 통합은 신의를 저버린 일”이라며 씁쓸해했고(26일, YTN <신율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 민주당 의장인 김민석 전 의원도 “부작용이 심할 것”이라며 반감을 표시했다.(25일, <오마이뉴스> 인터뷰)
더불어민주당 탈당 인사 중 적극적 신당파는 △안철수 신당(국민의당) △천정배 신당(국민모임) △천정배+박주선+정동영 연대 △박주선+박준영+김민석 연대 등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천 의원과 원외정당 사이를 박 의원이 잇고 있다. ‘천정배-안철수 연대’는 박 의원 입장에서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박 의원은 현역 의원 다수를 포진시킨 ‘안철수 신당’을 제외한 그 외 세력의 1차 통합을 구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협상력을 키운 뒤 국민의당과 당대당 통합을 꾀하는 2차 통합을 추진코자 한 것이다. 하지만 천 의원의 갑작스런 통합 발표로 박 의원의 구상은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바로 각개약진을 통한 흡수 통합이다. 다만 그렇게 되면 박 의원의 파이는 줄어든다.
국민의당 합류 여부와 관련해 박 의원 측 핵심관계자는 26일 <커버리지>와 통화에서 “합당이 예정돼 있다”고 했다. 날짜를 못 박진 않았지만 “이르면 모레(28일)”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천 의원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내면서도 “어차피 함께해야하지 않겠느냐”고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박 의원 측은 “천 의원이 (국민의당으로) 먼저 갔다고 해서 우리가 안 갈 순 없지 않느냐”며 “창당준비위원회를 꾸린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행동할 순 없지만, 의견을 수렴한 뒤 합당이 결정될 것”이라고 긍정적 신호를 내보였다.
박 의원과 교감했던 김민석 전 의원과 ‘제3지대’에 머물러 있는 박지원 의원도 안철수 신당을 상수에 놓고 흡수 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박주선 의원이 국민의당에 참여할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당은 그것을 보면서 대화하면 될 것 같다”고 했으며, 박지원 의원도 ”총선 전 국민의당과 통합해 중통합 수준까지는 가야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박주선 의원(가운데)이 지난 22일 서울 건대 동문회관에서 열린 통합신당 서울시당 창당대회에서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오른쪽 끝) 등과 함께 웃고 있다.(사진=박주선 의원 공식 홈페이지) |
“야권, 이대로는 안 된다”
더불어민주당을 제외한 야권 탈당파들의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하다.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통합의 물살 또한 빨라지고 있다. 정체된 야권의 헤게모니를 통해 다시 한 번 큰 그림을 구상하는 것도 방법이다. 야권의 지형재편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 첫번째 시험대가 4월 총선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야권의 적자를 가릴 한판 승부가 될지, 야권의 분열을 초래할지는 아직 예단할 수 없다. 분명한 점은 “야권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명제다. 통합이든 분열이든 야권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져왔다.
커버리지 정찬대 기자(press@coverag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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